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할 때 항상 생각하게 되는 도시 피렌체.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 걷다 보면 “어떻게 이 작은 도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들이 이토록 촘촘하게 모여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한 나라의 보물은 전쟁이나 약탈, 혹은 가문의 몰락과 함께 전 세계 미술관으로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프랑스나 영국의 박물관에 이집트 유물과 그리스 조각상이 가득한 것처럼요.
피렌체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작품들이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지금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었던 데에는 한 가문의 집념과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메디치 가문: 르네상스의 설계자들
아마도 서양 미술사를 교양으로 들어 보았다면 메디치(Medici) 가문에 대해 한번 쯤은 들어 보셨을 거예요.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메디치가문을 빼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수 있어요.
예술을 사랑한 후원자
15세기, 유럽 최고의 금융업자였던 메디치 가문은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손자 로렌초가 예술가들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후원으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예술이 화려하게 꽃 피울수 있었어요.
미켈란젤로가 10대 시절 메디치 궁전에서 함께 머물며 예술을 배웠고, 보티첼리는 메디치의 주문으로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메디치의 후원 아래 자유롭게 예술에 몰두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서양 미술의 기본은 사실상 메디치의 안목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디치의 집무실(Uffizi)이 미술관으로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인 우피치 미술관의 이름은 원래 메디치 가문의 행정 집무실(Office)이었던 데에서 유래 했어요.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집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강 건너 피티 궁전으로 돌아갈 때 일반 시민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건물 위로 긴 통로를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바사리 회랑(Corridoio Vasariano)이에요.
아르노 강 위를 가로질러 베키오 다리를 넘어 피티 궁전까지 이어지는 약 1킬로미터의 비밀 통로인데 지금은 문화적 가치 보존을 위해 일반 관람이 제한되어 있답니다.

역사에 남을 가족 협약(Patto di Famiglia)
300년 가까이 피렌체를 통치하던 이 가문에도 끝이 다가 왔는데, 가문의 마지막 피를 이은 사람은 단 한 명의 여인이 남게 되었습니다.
피렌체를 위한 한 여인의 선택
안나 마리아 루이자(Anna Maria Luisa de’ Medici),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직계 후손으로, 남편도 자식도 없이 홀로 남아 가문의 끝을 지켜본 여인이에요.
1737년, 그녀는 피렌체의 통치권이 오스트리아의 로렌 가문으로 넘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단 하나의 조건을 걸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이 수백 년간 모은 모든 예술품, 도서관, 과학 기구, 보석까지 모두 도시 피렌체에 기증할테니 단 하나의 조건을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문이 소유한 모든 예술품과 유산은 단 하나도 피렌체 밖으로 내보낼 수 없으며, 이 모든 것은 피렌체와 전 세계 사람들의 관람과 교육을 위해 영원히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가족 협약(Patto di Famiglia)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남긴 이 유언은 후대에 피렌체라는 도시 자체를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로 만들었습니다.

협약이 지켜낸 것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유럽을 휩쓸며 수많은 예술품을 파리로 가져가던 때,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 청동 말 조각상, 바티칸의 라파엘로 작품들도 루브르로 향했습니다.
피렌체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1799년 프랑스군이 피렌체를 점령했고, 피티 궁전에서 그림들과 세공품들을 가져갔습니다.
1803년에는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메디치의 비너스’ 조각상도 파리로 실려갔어요.
하지만 당시 우피치 관장 토마소 푸치니는 가족 협약이라는 법적 문서를 근거로 프랑스군에 맞서 싸우면서 더 많은 작품들이 피렌체에서 빠져 나가는것을 막을수 있었다고 해요.
또한 1815년 나폴레옹이 패배한 후, 가족 협약은 피렌체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빼앗긴 작품들을 대부분 피렌체로 돌아올 수 있게 기여를 하였다고도 하구요.

피렌체를 걷는다는 것은
파리 루브르나 런던 대영박물관에 가면 전 세계에서 모아온 작품들을 볼 수 있죠.
반면에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따라가다 보면 중간중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운 작품과 건물들이 나타나는 피렌체는, 도시 자체가 잘 꾸며진 지붕 없는 거대한 박물관 같아요.
한 가문의 집요한 예술 사랑과 마지막 후손의 숭고한 약속이 만들어낸 기적, 피렌체.
500년 전 메디치가 만들어 왔던 그 풍경 속을 걷고, 그들이 후원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일은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피렌체에서 누릴 수 있는 진짜 선물인것 같아요.
이 작은 역사를 알고 가시는 여러분의 피렌체 여행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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