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를 보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
안달루시아의 보석, 그라나다를 두고 이런 스페인 속담이 있어요.
석류(Granada)라는 이름처럼 붉고 달콤한 역사를 품은 도시, 그라나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이슬람 문명의 꽃으로, 다시 가톨릭 왕국의 땅으로,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문명이 교차한 곳이에요.
스페인 그라나다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층층이 쌓인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돼요.
알함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 알바이신 지구의 좁은 골목 안에 로마인과 무어인, 기독교인의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도시, 그라나다의 역사를 함께 걸어볼게요.

그라나다의 시작: 로마에서 이슬람까지
그라나다의 역사는 기원전 180년, 로마가 이땅을 이리베리스(Iliberis)라 명명하며 식민지로 삼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도 ‘꽃과 열매가 가득한 땅’이라 불릴 만큼 비옥한 곳이었죠.
세월이 흘러 711년, 무슬림 군대가 지브롤터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정복 하면서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고 전리품(땅)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745년 뒤늦게 합류한 새로운 병사들이 코르도바로 가서 약속받은 전리품을 요구했지만 이미 다 분배된 후였어요.
대신 그들은 ‘저 멀리 산기슭 땅’을 보상으로 받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그라나다.
당시 병사들은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훗날 이곳이 스페인 역사상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나스리 왕조의 황금시대와 알함브라 궁전 (1238-1492)
1238년, 붉은 머리색 때문에 알 아흐마르(붉은 자)라 불린 무함마드 이븐 나스르가 나스리 왕조를 세우며 그라나다의 황금시대가 열려요.
다른 이슬람 도시들이 하나둘 가톨릭 세력에 넘어갈 때, 그라나다가 250년이나 더 버틴 비결은 지혜로운 외교였어요.
기독교 왕국들에 조공을 바치며 평화를 샀고, 험준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천연 요새 삼아 문명을 지켜낼 수 있었어요.
알함브라 궁전 : 이슬람 문명의 정수
그렇게 평화를 지키면서 이루어낸 황금시대의 상징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
밖에서 보면 밋밋하고 견고해 보이는 붉은 요새지만,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외관과 다른 화려함에 말을 잃게 됩니다.
회반죽에 새긴 섬세한 아라베스크 무늬, 색색의 타일 모자이크, 끊임없이 들리는 맑은 물소리… 이곳은 단순한 궁전이 아니라 모스크와 목욕탕, 비단 작업장까지 갖춘 완벽한 자급자족 소도시였어요.

1492년: 800년 역사의 종말과 눈물
영원할 것 같던 이슬람의 통치도 1492년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연합군 앞에 마지막 왕 보압딜은 결국 항복하고 맙니다.
알함브라를 쫒겨나며 그가 마지막으로 한숨 쉬며 떠난 그 언덕은 지금도 ‘무어인의 한숨 언덕(Puerto del Suspiro del Moro)’이라 불려요.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보면 그의 한숨과 슬픔이 어느정도 였을지 짐작이 간답니다😏

정복 이후: 상처 위에 핀 꽃
항복 조약에는 종교적 관용이 약속됐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유대인 추방과 무어인 강제 이주, 아랍어 서적 소각 등 깊은 상처가 남았어요.
하지만 그라나다는 그 상처 위에 다시 꽃을 피웠어요.
모스크 자리에 웅장한 대성당이 들어서고, 알함브라 옆에 카를로스 5세 궁전이 세워지며 두 종교와 건축양식이 오늘날의 독특한 미학을 완성했어요.
르네상스 스타일의 육중한 사각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지금도 알함브라 단지 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Fun Fact!
1492년 4월, 이슬람 항복 직후 바로 이곳 그라나다에서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신대륙 항해 자금 지원을 약속받았어요.
이슬람 왕국의 종말이 곧 대항해시대라는 새로운 세계사의 문을 연 셈이에요.(두둥~)

오늘날의 그라나다
그라나다는 몇년전 한국에서 알함브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때문인지 어디를 가나 한국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어요.
알함브라의 정교한 무늬 속에서, 또 알바이신 지구의 좁은 골목길에서 로마인과 무어인, 그리고 기독교인의 이야기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라나다.
여기에 그라나다만의 덤, 음료 한 잔을 시키면 무료 타파스가 따라오는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완벽한 여행지가 또 있을까요?
그라나다를 보지 않고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는 옛 스페인 속담은 결코 과장이 아닌것 같습니다.
다음번에는 제가 가 보았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그라나다 시내를 사진과 함께 더 자세히 소개할께요.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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